한국역사

기사환국 배경 및 남인 집권 과정 요약 정리

고두암 2016. 10. 15.

1689년(숙종 15년)에 일어난 기사환국은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들이 쫓겨나고 인들

정권을 잡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기사환국은 소의 장씨(장희빈) 소생인 왕자 윤을 숙종이

원자로 책봉하려는 것을 서인들이 반대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사건으로 원자 책봉을

반대하던 서인들부분이 벼슬을 빼앗기고 유배되거나 죽임을 당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환국 배경>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던 중 소의 장씨(장희빈)가 아들을 낳자, 숙종

은 크게 기뻐하면서 소의 장씨의 소생인 왕자 윤을 원자로 삼으려 했고, 이에 송시열 등의

서인들은 중전이 아직 젊었으니 원자 책봉을 뒤로 미루라고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숙종은 1689년 서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책봉하고 그의

소생인 왕자 윤을 원자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송시열을 비롯한 남인들은 원자 책봉을 거두

라고 상소를 올렸고, 이에 이현기, 남치훈 등의 남인들은 송시열을 반박하며 탄핵했습니다.

 

 

결국 숙종은 남인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송시열은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다가 죽였으며,

김수홍, 김수항, 김만중 등의 서인들도 벼슬을 빼앗기고 유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경신

환국으로 쫓겨났던 남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기사환국 남인 집권 과정>

소의 장씨는 자신이 낳은 왕자를 빨리 원자로 책봉해 달라고 숙종에게 졸랐고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친 숙종은 난처했습니다. 이에 소의 장씨는 친정 오라버니 장희재와 남인인

유명견, 민암 등과 손을 잡고 정권 쟁탈을 시작했습니다. 

 

남인 유명견과 민암 등은 소의 장씨를 빈으로 봉하고 왕자 윤을 원자로 삼아야 한다고

숙종에서 건의했고, 숙종은 그 건의를 받아들여 왕자 윤을 원자로,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책봉했습니다. 

 

 

남인들은 원자 책봉 반대 상소를 올린 송시열을 대역죄인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다는 상소

를 올렸고, 숙종은 송시열을 제주도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여러 남인들이 조정에

들어왔고 많은 서인들은 쫓겨나 사약을 받거나 귀양을 갔습니다.

 

숙종이 중전 민씨를 서인으로 폐하고 희빈 장씨를 중전으로 삼으려 하자 벼슬에서 쫓겨

난 서인들이 중전 민씨 폐출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희빈 장씨의 꼬임에 넘어간

숙종은 80명이 넘는 서인들을 형벌로 다스렸으며, 1989년 5월 인현 왕후가 서인으로

강등되어 궁궐을 떠났습니다.

 

서인의 우두머리 송시열은 남인들의 제주도에서 한성으로 올라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일생을 마쳤으며, 마침내 남인들이 확고히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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