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남이장군 시

고두암 2016. 9. 1.

남이장군이 역적으로 몰린 이유는 남이장군 시인데, 남이장군을 시기했던 유자광이

시의 내용을 문제삼아 모함했기 때문입니다. 남이장군의 시는 그가 두만강 물줄기를

보고 감동하여 읊은 시조였는데, 이를 유자광이 교묘하게 트집잡아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남이장군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하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이 시에서 유자광은 '사나이 스무 살

에 나라 평정 못하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를 교묘하게 트집잡아 역모를 품었

다고 모함한 것입니다.

 

 

남이장군은 이 시 말고도 혜성이 나타나자 옛 것이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했는데, 유자광은 이 말 역시 역모를 품은 말이라고 예종에게 고하여 남이장군을

역모로 몰았습니다. 

 

 

세조의 남다른 총애로 승승장구하여 병조판서에 올랐던 남이였지만, 예종 즉위 후 훈구

대신들의 견제를 받다가 병조판서에서 해임되어 겸사복장이라는 한직으로 내몰립니다.

남이가 억울한 심정으로 궁을 나서던 중 하늘에서 혜성이 떨어지자 이를 올려다보며,

"혜성의 등장은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징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평소 남이를 시기하던 유자광이 이 말을 전해 듣고는 남이가 역모를 꾀한다고 예종에게

일러 바치면서, 그가 지은 시에도 역모 내용이 담겼다고 모함을 하여, 남이는 한순간에

역적이 되어 사지가 찢기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후세에 많은 사람들은 남이의 옥사를 간신 유자광이 조작하여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고 말합니다. 남이장군과 함께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 당시 영의정 강순입니다. 그는

남이장군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외면했고, 남이는 그가 미워 영의정 강순과 함께 역모를

했다고 걸고 넘어가 결국 그도 80세의 나이에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습니다. 

 

남이장군은 자신의 부하였던 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때 임금은 예종으로 남이장군을 터무니없이 죽이고 재위 1년 2개월만에 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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