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임진왜란 의병의 활약과 의병장들 간략 정리

고두암 2015. 12. 28.

7년간의 조.일전쟁(임진왜란)에서 임진왜란 의병의 활약은 왜군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592년(선조 25, 임진년) 4월 13일,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오자 임진왜란 의병장들은 의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왜군을 무찔렀습니다.

 

전 국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왜군(일본군)과 싸웠습니다. 농부나 선비나

아녀자 할 것 없이 왜적과 싸웠으며 심지어 스님들까지 목탁 대신 무기를 들고 왜군을 무찔렀습니다.

 

 

스님 중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영규 대사(?~1592)입니다. 계룡산에 들어가 서산 대사

밑에서 불도를 닦은 영규 대사는 선조가 의주로 피란 갔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통곡했습니다.

 

영규 대사는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나라를 잃으면 불제자가 어디 있겠냐면서 며칠 사이에 승병 500

여 명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힘을 합쳤습니다. 의병과 관군이 합치니 1,600명이나 되었습니다.

 

영규 대사는 조헌의 지휘를 받아 승병을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금산 싸움에서 목숨을 바쳐 700구의

시체가 함께 묻혔는데, 이 곳이 바로 사적 제105호로 지정된 '칠백 의총'입니다.

 

 

한편 김시민 장군(1554~1592)은 진주성 싸움에서 왜군을 무찔러 육지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고

권율 장군(1537~1599)은 행주 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러 '행주 대첩'을 이루었는데, 진주성싸움

(진주 대첩)과 행주 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불립니다.

 

 

주요 의병장과 의병의 활약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곽재우 의병장(1552~1617)

붉은 옷을 입고 싸워서 '홍의 장군'으로 불렸으며, 최초의 의병장으로 경상도 의령에서 군사를 일으

켰습니다. 의령.합천.창원.현풍.낙동강 일대에서 활약했는데, 왜군은 붉은 옷만 보아도 두려워 도망

쳤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수십 명밖에 안 되던 의병이 싸움에서마다 이기자 2,000명이나 모였습니다. 곽재우는 왜군

이 전라도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정암진에서 완전히 막아 이순신 장군의 수군을 보호한 공로가

크며, 정유재란 때는 창녕의 화왕 산성을 지켜 냈습니다.

 

 

곽재우는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을 마지못해 두어번 받았으나 얼마 안 가서 내놓는가 하면 번번이

사양하거나 낙향했는데, '곡식을 먹지 않고 솔잎으로 끼니를 이으며 정자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

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의 명장 곽재우는 6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고경명 의병장(1533~1592)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전에 동래 부사를 지낸 바 있습니다. 고경명은 의병을 이

끌어 북상했으며 금산에서 전사했으며, 아들 고종후는 진주성에서 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전사하였

습니다.

 

 

3. 김덕령 의병장(1567~1596)

전라도 광주 출신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 장군 아래에 들어가 호남 지방에서 왜군을

막았습니다. 그 후 홍의 장군 곽재우와 협력하여 수차례 왜군을 무찔렀습니다. 하지만 이몽학의

난과 관계되었다는 신경행의 무고로 억울하게 옥 안에서 죽었습니다.

 

4. 조헌 의병장(1544~1592)

충청도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은 청주성을 되찾은 뒤, 금산 싸움에서 고경명, 영규 대사 등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5. 정문부 의병장(1565~1624)

함경도 길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정문부는 왜적을 무찌르고 경주.경성.회령 등지를 되찾았습니다.

 

6. 휴정 대사(1520~1604)

서산 대사라고도 하며 묘향산에서 전국의 절에 승병 운동을 일으키도록 지시했습니다. 휴정의 제자

로는 유정, 영규, 처영 등이 유명합니다.

 

7. 유정 대사(1544~1610)

송운 대사 또는 사명당이라고 하며 금강산에서 승병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강화를 위해

사신으로 일본에 가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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