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태조 이성계 업적 요약 정리

고두암 2015. 12. 8.

조선의 제1대 왕 태조 이성계 업적은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의 건국입니다. 이성계(1335~1408)는 삭방도

만호 겸 병마사, 평장사로 재직한 이자춘(1315~1361)의 아들로 태어나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후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1392년 7월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초기에는 국호를 그대로 '고려'라 하였다가 1393년에 '조선'으로 고치고 이후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1393년부터 1396년까지 궁궐 공사를 하여 4대문.4소문을 갖춘 도성을 마련했으며,

유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아 농본주의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1394년 <조선 경국전> 편찬으로 법 제도를 마련하고, 한양에 성균관,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학을 장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왕자들의 왕위 쟁탈전인 제1.2차 왕자의 난으로 골육상쟁의 피를 본 태조는 왕위를

둘째 아들(정종)에게 념겨 주고, 고향으로 내려가 세상을 잊고 살려다가 결국 한양으로 돌아와 창덕궁에

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업적은 조선 건국 이래 6년 2개월의 재위 기간(1392.7~1398.9) 동안 새로운 도읍지(한양)

조성과 궁궐 건립, 조선 경국전 편찬으로 조선의 법 제도 마련, 정도전 등으로 하여금 건국 이념인 유교

의 장려 및 농업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한 것입니다.

 

 

재위 기간 중 특히 주목할만한 업적으로는 궁궐 건립인데요,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종묘와 동서남북에 설치한 4대문인 홍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

등은 우수한 예술성으로 뛰어난 건축 문화를 전세계에 떨쳤으며,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하지만 막내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왕위 쟁탈권을 다툰 제1차 왕자의 난과 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하여 골육상쟁을 겪는 등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도 유명한데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 활쏘기에 전념하여

호랑이를 활로 쏘아 죽였다고 합니다.

 

이성계의 역성혁명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덕이 없어 민심을 잃은 왕을 하늘의 뜻으로 내쫓고 왕위에 오르는 일을 '역성혁명'이라고 합니다. 이성계

는 역성혁명을 통하여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명나라의 요동 땅을 빼앗기 위해 군사를 이끌었던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위화도에 진을 쳤다가

말을 돌려 이른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습니다.

 

개경을 함락시키고 요동 정벌을 명령한 최영 장군과 고려 우왕을 내쫓고 정권을 손에 쥐었습니다. 왕을

갈아 치우며 정적을 없애던 이성계 일파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마저 죽였습니다.

 

1392년 7월, 이성계는 마침내 신진 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고, 고려는 34왕 47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새 나라 조선 왕조가 탄생한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지 10여일이 지나자 임금으로서 최초의 교서를 내렸습니다.

'나라 이름을 그대로 고려라고 하고, 모든 제도를 전 왕조와 같이 하겠노라.'

 

태조는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 이름을 당장 고치지 않고 있다가 태조 2년(1393) 2월 15일,

국호를 조선이라고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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