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남이 장군 설화(일화) 요약 정리

고두암 2015. 11. 1.

전국에 걸쳐 다양한 구전 설화로 전해오고 있는 남이 장군 설화(일화)는 무속 세계에서도 장군 신으로 추앙

받을 정도로 유명하기에, 남이 장군(1441~1468)의 설화를 요약 정리해 보았습니다.

 

남이는 조선 제3대 태종의 넷째 딸 정선 공주의 아들이며, 세조의 최측근인 권람의 사위였는데,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출세의 길을 달렸고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며 적개 공신 1등에 올랐고, 이어 여진족

을 토벌한 공으로 공조판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했고, 나라의 국방과 군사를 총괄하는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1468년

그를 아끼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곧 병조판서에서 밀려나고 역모 사건에 휘말려 끔찍한 처벌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유자광의 음모와 권신들의 견제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남이를 안타까워했고,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으며, 무속에서는 지금까지 그를 장군 신으로 모시며 추앙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이천 백족산에는 '굴바위'라고 불리는 동굴 근처에 큰 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더니 수도를 하던 승려들이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승려들은 떠나 버리고,

한 승려만 남아 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승려는 언젠가 자신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갔습니다. 이미

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던 친구는 승려에게 그 절을 떠나라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승려가 절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자 친구는 승려에게 무명옷 한 벌을 내어 주며, "절을 떠나기 싫다면 이 옷이라도 꼭

입고 가게. 옷에서 냄새가 고약하게 나더라도 절대로 벗어서는 안 되네."라고 말했습니다.

 

 

승려는 친구가 준 남루한 무명옷을 입고 절로 돌아갔고, 다음 날, 걱정이 된 친구는 날이 밝자마자 사람들을

데리고 절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승려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한참을 찾아보니 굴바위 앞에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있었는데, 지네의 입에 무명옷이 물려 있었습니다.

 

지네가 승려를 삼키다가 그가 무명옷에 발라 놓은 발라 놓은 담배진에 질식해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백족산(지금의 경기도 장호원에 있는 산) 산허리에 오색빛의 구름이 감돌더니 구름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개미실(지금의 충북 음성군 감곡면) 남씨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열 달 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바로 '남이'라고 합니다.

 

남이와 관련된 설화는 <연려실기술>이나 <청야만집>, <대동기문> 등의 여러 문헌에 남아 있으며, 전국에

걸쳐 다양한 구전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 남양주와 가평군 사이에 있는 축령산에는 남이가 어린 시절 무예를 닦았다고 하는 남이 바위가

있으며,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남이섬 또한 남이가 유배 생활을 한 인연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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