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고두암 2015. 10. 18.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정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는데요, 천주교의 전래는 18세기 중엽 조선사회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조선 사람으로는 최초로 청나라에 가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이벽과 함께 1784년

천주교회를 창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해진 것은 광해군 때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이수광, 유몽인 등이 당시 중국

의 베이징(북경)에 와 있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로부터 <천주실의(1603~1067 간행)>라는 책을

얻어 오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후 인조 23년인 1645년에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가 있던 소현 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독일인 아담

샬로부터 천주교 서적을 얻어 왔으며, 숙종 때는 청나라 사신으로 갔던 이이명이 독일인 신부 쾨글러 등으로

부터 천주교 서적을 많이 얻어 왔습니다.

 

그 때 서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현실 정치에 불만이 많았던 남인 학자들은 천주교 교리에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익과 안정복 등은 천주교를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이라고 하여 '서학(西)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사람은 귀천이 없고 평등하다'는 평등사상과 '하느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에

이끌려 천주교를 믿으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특히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양반과 중인 그리고

사회에서 멸시당했던 천민과 상민 등이 천주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18세기 중엽, 천주교는 조선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조선 사람으로는 최초로

청나라에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은 이벽과 함께 1784년에 천주교회를 창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선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 사상과 교리적으로 부딪치는 천주교의 신자가 증가하자 조선 정부에서는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성리학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던 조선 사회의 풍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천주교가 내세운 평등 사상을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제22대왕 정조(1752~1800)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 정순 왕후 김씨와 노론의 벽파 세력이 천주교

신자들을 크게 탄압하는 신유박해를 일으켰고, 1846년에는 우니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이 순교

하는 병오박해가 일어나는 등 천주교에 대한 핍박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천주교는 양반층에서도 신자가 생기고 계속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들여와서 적극적으로 전파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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