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삼봉 정도전 생애 간략 정리

고두암 2015. 9. 15.

조선개국 공신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공이 가장 큰 인물로 삼봉 정도전(1337/1342~1398)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새 왕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었는데, 대부분 이름있는 가문 출신인

여느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경북 영주가 그의 고향입니다.

 

고조 할아버지는 고을의 낮은 벼슬아치로 대를 이었는데, 아버지 정운경에 이르러 직제학이라는 중앙의

관리로 나아갈 수 있었고, 어미니는 노비였습니다.

 

정도전은 이색 밑에서 정몽주, 이승인 등과 함께 배웠는데, 아버지 정운경이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친구

인 덕분에 좋은 스승을 만났지만,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1360년(공민왕 9년), 두뇌가 명석한 정도전은 성균관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진사시에 붙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성균관 박사로 정몽주와 명륜당에서 유학을 강론한 정도전은 1371년 태상 박사가 되기도

하였으나 친원세력과 맞서다가 귀양을 갔습니다.

 

유배지에서 풀려난 정도전은 몇 년동안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가, 1383년 함경도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감으로써 출세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고, 이성계가 추천해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으며,

위화도 회군이 성공하자 역성 혁명을 앞장 서서 이끌었습니다.

 

'왕이 민심을 잃으면 왕조를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사상이 곧 역성 혁명의 이론이었습니다.

 

이성계가 사냥 도중 말에서 떨어졌을 때, 정몽주는 함께 공부했던 정도전을 탄핵하여 귀양을 보냈으나,

이방원이 이성계를 한양으로 돌아오게 한 뒤, 정도전은 다시 벼슬을 받았습니다.

 

정몽주가 이방원의 부하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당하자 정도전은 앞장 서서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역성 혁명을 성공시켰습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 후에도 밤을 새우면서까지 열심히 일했으며, <조선 경국전>을 편찬해 새로운 법

제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또 <경제 문감>을 지어 재상, 대간 등의 직책을 세우고, <경제 문감 별집>

써서 왕의 나갈길을 밝혔고,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도전의 이론 서적 <불씨 잡변>을

지었습니다.

 

어린 세자 방석을 잘 가르쳐서 재상이 중심이 되는 신권 정치를 꿈꾸던 정도전은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차기 왕위 계승 문제로 이방원과 대립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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