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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개척 이야기 요약 설명

고두암 2015. 9. 26.

실크 로드(Silk Road)라고 불리는 비단길 개척 이야기를 요약 정리해 보았습니다. 실크 로드는 독일의 베를린

대학 교수인 리히트호펜이 만들어 낸 말로, 그는 중국이라는 책 속에 지도 한 장을 넣어 '중국과 유럽을 잇는

중앙 아시아의 길'로 소개했는데, 이로 인해 중앙 아시아는 유럽과 중국을 이어주는 곳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통신.교통수단이 없던 먼 옛날에는 동양과 서양이 교류하지 못하고 서로를 모른 채 지내왔습니다. 그 사이를

험준한 파미르 고원과 끝없이 펼쳐진 타클라마칸 사막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무제 때 사람인 장건은 이 길을 개척한 사람인데요, 당시 한나라는 북방에 사는 이민족인 흉노족의

침입 때문에 매우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무제는 중앙 아시아를 평정하고 세력을 떨치고 있던

대월지와 손을 잡고 흉노를 무찔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기원전 139년, 대월지국에 파견될 신하로 장건이 뽑혔습니다. 그나라 장건 일행 100여명은 한나라를 출발하여

가던 도중에 흉노족에게 붙잡혔습니다. 흉노는 장건에게 아내를 얻어 주며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

했으나, 장건은 황제의 사명을 잠시도 잊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포로가 된지 10년이 지난 기원전 129년경, 장건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여 서쪽으로 갔습니다. 대월

지국은 당시 텐산 산맥 북쪽에서 세력을 떨치던 오손이라는 유목 민족에 쫓겨 소그디아나 지방(현재 우즈베키

스탄 지역)으로 옮겨 가 있었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대월지국에 도착한 장건은 황제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한나라와 힘을 합쳐 흉노족을 정벌합시다." 그러나 대월지국의 왕은 말을 듣지 않았는데, 한나라가 흉노족

보다 힘이 약한 줄만 알았고, 또 기름진 땅에서 떠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건은 아무 성과없이 기원전 126년, 13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한무제는 장건의 여행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중앙 아시아 일대에서 보고 들은 각국의 문물,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등

서방 세계 이야기는 모두 새로웠습니다.

 

"우리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 것은 흉노의 무리야! 그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어."

한무제는 단독으로 흉노족을 토벌하라고 명했습니다. 장건도 나아가 공을 세웠습니다. "오손이 흉노의 공격을

받아 원한에 사무쳐 있다고 하니, 오손에게 금품을 줘 동맹을 맺는다면 흉노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장건의 건의를 한무제가 받아들여, 기원전 119년 장건은 일행 300명과 소와 말 수만 마리, 황금을 가지고 중앙

아시아로 파견되어 오손왕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서역 지방의 갖가지 정보였습니다. 흉노족을 몰아 낸 한무제는 서역과의 통로를

열었습니다. 그 길은 서역은 물론 이란, 이라크, 시리아, 로마까지 연결되었으며, 이 곳을 통해 중국의 비단이

서역으로 마구 팔려 나갔습니다.

 

이 동서의 장삿길이 바로 '비단길'이 된 것이지요. 비단길은 장사뿐 아니라 동서문화 교류에도 큰 영향을 끼

쳤습니다.

 

한나라가 전성기를 이룬 것은 장건의 서역 여행이 있던 때였습니다. 장건은 서역 여행을 하고 귀국한지 1년

쯤 뒤에 죽었으나, 그에 의해 전달된 한나라 문화는 서방 세계로 한없이 퍼져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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