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미국은 영토도 확장되어 30주로 늘어났고 1863년 1월 링컨의 노예 해방령에 의해 흑인
노예들이 해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서부 개척시대를 거쳐 1850년까지 처음에 13주였던 것이
19세기 중반에 30주로 늘어나고, 자유주와 노예주가 같은 비율로 생겨났습니다.
북부는 영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아 주로 공업이 발달했으나, 목화나 담배를 주로 생산하는 남부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여, 노예제도 폐지를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새로 생긴 남부의 캘리포니아
주가 자유주가 되자, 타협의 조건으로 도망 노예법을 북부에서도 확대시켜 시행하였습니다.
도망 노예법이란, 도망한 흑인 노예를 소유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1793년과 1850년 두차례에 걸쳐
미국의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입니다. 미국 의회는 1850년대에 앞으로 새로 생겨나는 주를 자유주로 할 것
인가? 노예주로 할 것인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1854년에는 북부에서 노예제도 확대 반대를 주장하는 공화당이 결성되었으나, 남부에선 노예제도 확대는
물론 그것을 법률로까지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1852년에 스토 부인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소설을 펴냈는데, 스토 부인은 '도망친 노예를
잡으면 상금을 준다'는 도망 노예법이 만들어지자, 이 법에 반대해 이 소설을 썼으며, 소설 속엔 흑인 노예
들의 비참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노예 해방의 바람을 불어일으키기도 하였
는데, 스토 부인은 실제로 도망친 노예를 집에 숨겨 주었다가 북부로 몰래 들여보내 주기도 하였습니다.
1860년에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었고, 링컨을 반대하는 남부의 7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였지만, 남부는 북부의 공업 지대를 지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1861년에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남북전쟁'입니다.
그 당시 북부는 23개 주에 인구가 2,300만명이며, 남부는 11개 주에 900만명 뿐이었습니다. 또 그 900
만명 중에 흑인 노예가 400만이었음으로 물자와 공업력뿐만 아니라 인구 수에서도 북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였으나, 초기 전세는 남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1863년 1월에 링컨은 마침내 '노예해방령'을 발표했습니다. 노예 해방령은 전쟁 중에 선포되었기 때문에
남부에서는 실시되지 않아 이 무렵에 해방된 노예수는 불과 20만명도 안되었습니다. 대신, 남부 흑인 노예
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군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한 것은 북군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정치적인 결정이었고, 영국과 프랑스가 남북전쟁
에 끼여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링컨은 노예 폐지라는 세계 여론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는 전세가 북군에게 유리해져 남군이 밀렸습니다. 그 해 11월, 링컨은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즈버그로
가서 유명한 연설을 하였고,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였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필요합니다."
남북전쟁 중 최대 격전지인 게티즈버그에서 북군이 승리함으로써 남북전쟁은 막을 내렸으며, 비로소 남부
의 흑인 노예들도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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