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크리스트교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크게 일어난 이슬람교 특징은 무엇일까? 이슬람교는 아랍인들이
믿는 종교인데요, 알라신을 유일신으로 받들고 복종하며, 알라신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교리와 일부
다처제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신도수는 세계인구의 20%인 9억명 정도이고 이슬람국가로 불리는
나라만도 43개국에 달합니다.
이슬람이란 절대 순종한다는 뜻이며, 이슬람 교도를 가리켜 무슬림(Muslim)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의 뜻은
'절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슬람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
리엘을 통해 마호메트에게 계시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 기독교 등의 셈족계 제종교를 완성시킨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이슬람교 창시자는 마호메트(Mahomet Mohammed, 570~632)인데, 아랍의 예언자로서 이슬람교도에게는
최후이고 최대의 예언자로, 아랍 메카에서 출생하고 메디나에서 사망했으며, 610년 이슬람교를 창시한 후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이슬람국가의 터전을 구축하면서, 622년 메디나에서 이슬람 교단을 창설하였
습니다.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원음으로는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라비아 반도는 7세기에 이를 때까지 발전이 없었으나 일찍부터 동방과 팔레스타인, 지중해를 잇는 초원의
길을 통해 대상들이 이곳을 통과하면서 상업의 중개도시로 번영했고, 메카도 그 중의 한 도시입니다.
대상(大商)이 이곳을 통과한 것은 이곳에 줄지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며, 오아시스는 모래 뿐인 사막의
곳곳에서 초목과 물을 제공해 주는 낙원과 같은 나그네들의 쉼터입니다.
아라비아인은 원래 다신교를 믿고 있었고, 다신교는 원시적인 종교로서 돌이나 샘 등의 물건따위를 신으로
받들었으며, 메카의 카바 신전이 가장 유명하였습니다.
카바 신전에는 해마다 아라비아 반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으나 이 카바 신앙은 '돈만 갖다 바치라'
는 식으로 너무 형식에 치우쳐 민중들의 불평이 대단했습니다.
570년 4월 메카의 하심 집안에서 마호메트가 태어났는데, 마호메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에서
자랐고, 12세 때 시리아로 떠나는 상인들에 끼여 여행을 하면서 크리스트교와 유대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
으며, 무역 여행을 할 때 마다 무엇보다 종교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 뒤, 마호메트는 큰 무역상을 하는 하디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남편없이 혼자 사는 여인인 하디자와
25세 때 결혼했는데, 그녀는 40세였고, 하디자와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습니다.
행복하고 부유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메카의 종교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못마땅했기 때문에 마호메트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혼자 명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날, 마호메트는 메카 부근의 히라 산 동굴에서 명상에 잠겼는데, 갑자기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마호메트여....."
"뉘시옵니까?"
"신의 사자로 온 가브리엘이다. 너에게 알리노니 '알라'를 유일신으로 모실지어다. 알라에게만 복종하라"
마호메트는 원시적인 다신교를 깨뜨리고 알라신만을 믿는 유일신(단 하나뿐인 신)을 섬기도록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이 때 그의 나이 41세 때 쯤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이슬람교가 탄생했는데, 이슬람이란 '복종'이란 뜻이며, 유일신인 알라에게만 복종한다는 종교가
이슬람교입니다. 마호메트는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라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가난과 차별로 고통받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교의 교리는 가슴에 파고들어 신도 수가 나날이 늘었으나,
이슬람교는 카바 신전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물리치는 것이어서 부호들의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마호메트는 메카에서의 포교를 그만두고 북방 도시인 메디나로 갔습니다. 622년에 마호메트가 70여 명의
신도들과 메디나로 간 것을 '헤지라(히즈라)'라고 하며, 이 해가 이슬람교의 기원년이 되었습니다. 메디나
란 말은 '예언자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마호메트는 메디나에서 이슬람 교단을 창설했고 그 지도자로 받들어졌으며, 성전(종교를 위해 하는 전쟁)을
일으켜 630년에 1만의 군대로 메카를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동안에 아라비아 반도의 여러 부족들도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전으로 인해 많은 고아와 미망인이 생겨나자 마호메트는 말했습니다.
"고아를 보살펴 줄 수 없으면 혼자 사는 여자를 아내로 삼아라. 몇 명이라도 상관없다." 마호메트 자신도
아내 10명을 얻었습니다. 이 때부터 이슬람교에 아내를 여럿 거느리는 일부다처 제도가 생겼습니다.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까지도 정복하기를 꿈꾸었던 마호메트는 632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마호메트가 세상을 떠난 뒤 신도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코란이냐, 칼이냐?"
이것은 이슬람교의 성전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말인데요, 사실 이슬람교는 비이슬람교의
교도들에게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으며, 세금만 내면 신앙과 재산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트교 세력과 페르시아 지배 밑에서 종교적으로 박해를 받던 이교도들은 대개 이슬람 세력을 환영
하며, 스스로 개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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