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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의 전개

고두암 2015. 9. 4.

1773년 북아메리카의 13개 영국령 식민지가 일으킨 전쟁인 미국 독립전쟁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까요?

1773년 12월 16일 밤, 차를 가득 실은 동인도 회사의 배가 보스턴 항구에 들어와 닻을 내렸는데, 다트

머스호를 비롯한 3척의 배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인디언 복장을 한 사나이들이 배를 습격했습니다. "보스턴 항구가 찻주전자가 되게 하자!

조지 3세의 티 파티이다!" 사나이들은 차가 든 상자를  마구 바다에 던졌는데, 버려진 차 상자는 모두

342개나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미국 독립운동의 시초가 된 '보스턴 차 사건'입니다.

 

 

이 무렵에 아메리카 대륙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고,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에 사람들이 이주

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이며 그 중에서는 영국인들이 가장 많았는데, 그들의 이주목적은 토지를

얻고 정치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에 관대한 편이었지만,18세기에 이르자 영국은 식민지에 가혹한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는데, 프랑스.에스파냐 등과의 전쟁으로 돈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요.

 

 

영국 정부는 자기 나라 산업에 필요한 원료를 식민지에서 생산토록 하고, 영국에서 만든 제품을 식민지에

비싸게 파는 한편, '인지 조례'를 만들어 "모든 신문, 책, 광고, 졸업장 등에 인지를 사서 붙여야 한다."고

식민지에 선포했습니다.

 

인지를 붙인다는 것은 곧 세금을 물리는 행위지요. 그렇지 않아도 각종 세금으로 시달리는 식민지인들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고, 식민지 곳곳에서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메리카의 대표가 참가하지 않은 자리에서 영국 의회가 부과하는 세금은 부당하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렇듯 식민지 아메리카와 영국 사이에 험악한 공기가 감돌고 있을 때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것

이지요.

 

 

영국 정부는 자신들이 식민지에 세운 '동인도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재정난을 도우려고 그 회사에

보관된 차를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세금없이 팔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그러자 식민지의 차 상인들은

여기에 불만을 품고 동인도 회사의 차를 바다에 마구 던져버리면서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보스턴 차 사건은 곧 영국 정부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분노를 터뜨린 셈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영국 규탄

집회가 열렸으며, 영국 정부는 인세법을 실시하지 않았으나, 차 사건만은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군대를 풀어서 식민지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몰수하고 모든 자치 활동을 금지하자, 식민지인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1774년 9월, 식민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제1회 대륙회의를 개최하고, 식민지 주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영국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반성은 커녕 무력을 사용하는 바람에

1775년 4월,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13개 주의 식민지 대표들은 그 해 6월 필라델피아에 모여 제2차 대륙회의를  열고,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에 임명했습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런 구호가 만들어졌습니다.

 

 

1776년 7월 4일에는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 선언서>가 공포되었습니다. 그 서문에는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라고 되어 있었고, 바야흐로 미국의 독립전쟁에 불이 당겨진 것이었지요.

 

위싱턴이 이끄는 독립군은 벙커힐 언덕에서 영국군과 최초의 전투를 치러 큰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투에서 물자와 무기가 부족한 독립군이 항상 불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1783년 파리 조약 체결로

독립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미합중국(미국)이 탄생했으며, 1789년,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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