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위화도회군과 역성혁명 조선이 탄생하다

고두암 2015. 9. 2.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위화도에 진을 쳤다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한 후 역성혁명을 통하여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덕이 없어 민심을 잃은 왕을 하늘의 뜻으로 내쫓고 왕의 후손이 아닌 자가

왕위에 오르는 일을 역성혁명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통하여 조선을 건국하고

조선의 초대왕이 되었습니다.

 

명나라의 요동을 빼앗기 위해 군사를 이끌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 진을 쳤다가 말을 돌려 이는바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것입니다.

 

 

개경을 함락시킨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명령한 최영 장군과 우왕을 내쫓고 정권을 손에 쥐었으며,

왕을 갈아 치우며 정적(정치적인 적)을 없애던 이성계 일파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마저

죽였습니다.

 

위화도회군이란?

명나라가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자 최영은 명나라의 요구를 무시하고, 요동을 점령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 등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으며, 고려가 요동을 공격하는 동안 왜구가 쳐들어올 염려가 있고,

여름철엔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으며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수 있어 전쟁이 불가하단

'사불가론'을 내세우며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이성계와 조민수 등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의 최영은 친 후 유배보냈다가 권력을

장악하는데, 이를 '위화도회군'이라고 합니다.

 

1392년 7월 마침내 이성계는 역성혁명으로 신진 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고, 고려는 34왕

47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으며, 새나라 조선 왕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지 10여일이 지나자 임금으로서 최초의 교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고려라 하고, 모든 제도를 전 왕조와 같이 하겠노라." 였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나라 이름을 당장 고치지 않았는데요, 그것은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

었습니다. 또한 태조는 나라를 다스릴 17가지 정책을 발표하였으며, 며칠 뒤에는 막내 왕자 방석을

세자로 삼았고, 개국 공신 44명에게는 상을 내렷습니다.

 

조정 대신들도 바꾸었는데, 문하부 좌시중에 배극렴, 우시중에 조준이 각각 임명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나라가 첫발을 내디뎠지만 따르지 않는 자들이 많아 이성계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점차 새 왕조의 기틀이 갖추어지자 정도전, 조준 등이 국호를 바꿀 것을 건의했고, 태조 2년(1393)

2월 15일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이라는 국호가 정해진 배경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후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새로운 왕조의 수립을 알리는 한편, 국호를 바꾸

겠다는 뜻을 전했으며, 명나라는 이를 승인하였고, 이에 이성계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국호를 정해 1392년 11월 예문관 학사 한상질을 명나라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세조 때의 권신이자 한명회의 조부이기도 한 한상질이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 돌아옴으로써 새로운 왕조의 이름이 결정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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