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나라의 시황제를 줄여서 진시황이라고 하는데, 진시황 업적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의 시황제는 장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정입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혼란에 빠진 드넓은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세계 최초로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시황제는 출생부터가 기이하였는데, 사마천의 <사기>에는 시황제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말, 진나라의 자초라는 왕자가 조나라의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조나라의 큰
부자였던 여불위는 자초가 큰 인물이 될 것을 알아보고, "당신은 보물같은 사람이오." 라며
극진히 대했습니다.
그 뒤 여불위는 자초가 진나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총애하던 여자를 자초에게 주었는데, 그 여자는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자초가 죽자 결국 이 아이가 13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바로 그가 진시황입니다.
그는 대개혁을 실시하여 국력을 키워 한.조.연.위.초.제의 6국을 차례로 꺽고,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하였으며, 진나라는 중국에서 최초로 대통일 국가가 되었습니다.
"천하통일을 이룬 나를 '짐'이라 하고, 왕보다 높은 짐을 '황제'라 부르시오." 이렇게 하여
황제가 생겼습니다. 황제는 왕 위의 군주라는 뜻이며,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들인 삼황 오제
에서 '황(皇)'과 '제(帝)'를 따온 것입니다.
이제 진시황의 업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진시황은 중국사회를 크게 바꾸는 대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주의 봉건제를 없애고 대신에
군현제를 실시했습니다. 전국을 36군(뒤에 48군)으로 나누고 각 군에는 많은 현을 두어
자신이 임명한 관리를 파견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화폐.도량형(자, 되와 말, 저울)뿐 아니라 문자도 간단한 전서로 통일하였습니다. 또한
수도를 중심으로 사방 팔방으로 도로를 만들었으며,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유목민)가
남쪽으로 침입해 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북쪽에 쌓은 이 만리장성의 길이는 4,000㎞이며, 나중에 쌓은 것까지 합치면 6,000㎞가
넘는데, 만리장성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인류의 최대 공사로 꼽힙니다.
수도 셴양에는 웅장한 궁전인 아방궁을 새로 지었고 여산에 능을 건설하였는데, 여산릉은
70만 명을 동원해 지하에 만든 무덤 궁전으로, 항상 수은이 흐르도록 하천이 설계되었고,
만일 침입자가 들어오면 입구를 향해 화살이 날아가 맞아 죽게 설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사상마저도 하나로 통일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 중에서
법가(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사상)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 사상은 모두 금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서적들을 불태워 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생매장을 시켰는데,
이를 '분서갱유'라고 합니다.
진(중국식 발음은 친)의 세력은 날로 뻗어, 그 이름이 서방 세계까지 널리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중국을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 것도 '진(chin)'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세계사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측천무후 일생 간략 요약 (0) | 2015.07.26 |
---|---|
소크라테스 명언과 독배를 마신 이유 (0) | 2015.07.22 |
석가모니 부처님과 불교의 교리 (0) | 2015.07.16 |
브라만교와 카스트제도 (1) | 2015.07.10 |
알파벳의 기원과 발전 (0) | 2015.07.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