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두문동 72현 그들은 누구인가

고두암 2017. 9. 2.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 문인들 72명과 48명의 무신들은 더 이상 관직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관직을 버리고 개성(개경) 남쪽에 있는 만수산으로 들어가 훗날 두문동이라

불린 곳에 모여 살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두문동 72현과 48현인데요,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집밖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

습니다.

 

 

두문동 72현은 두문동 48현과 함께 세상과 등지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이성계가 높은 벼슬을 제안하며 설득했지만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두문동을 포위하고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불을 지르면 그들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

이라고 예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집 밖으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 나오지 않은 경우를 가리키는 고사성어 '두문불출

(杜門不出)'은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성계는 두문동으로 들어간 고려의 충신 120명(문인 72명, 무신 48명)을 집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많은 나무를 실어다가 두문동 마을을 빙 둘러치고 사람이 빠져 나올

곳만 남기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부하들이 어서 나와 목숨을 건지고

벼슬을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지만 120명의 충신들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면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고스란히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절개가 굳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이성계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또

있었는데요, 그들은 바로 고려 왕실을 이어 온 왕씨들이었습니다. "왕족이 반역을

도모할지 모른다." 이성계 일파는 먼저 공양군으로 강등된 고려의 전(前) 왕과

아우, 세자 등을 역적 모의죄를 뒤집어 쒸워 죽였습니다.

 

 

그런 다음 왕씨들에게 조용한 섬에서 편히 살게 해 주겠다며 모두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왕씨들이 개경으로 모이자 관리들은 그들을 배에 태웠습니다. 수십

척의 배가 거제도를 향해 나아갈 때 미리 뚫어 놓은 바닥의 구멍으로 물이 새어

들었습니다. "살려줘! 속았다."

 

 

마침내 배에 탄 왕씨들은 모조리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다만, 속지 않은 왕씨

들만이 산 속에 숨어 살았는데, 그들은 성을 전(全), 옥(玉), 용(龍)씨로 바꾸어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태조 실록]에 보면 왕씨의 후손들은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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