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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배경 및 전개과정 결과 요약 설명

고두암 2016. 4. 13.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프랑스 혁명 배경은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해서인데요, 프랑스 혁명

전개과정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8세기의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이라는 신분제도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

신분제도에서는 성직자를 제1신분으로, 귀족을 제2신분으로 하여 특권 계급을 이루었습니다. 

 

약 2,700만 명의 프랑스 인구 중 특권 계급인 성직자와 귀족은 40만을 간신히 웃돌 따름이어서, 제3신분인

일반 국민에 비하면 매우 적은 소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특권 계급이 프랑스 전체 토지를 30% 이상

차지하고 관직을 독차지했으며 면세 특권까지 누렸습니다. 

 

 

<프랑스 혁명 배경>

귀족들은 호화로운 사치 생활에 빠져 있었지만 상공업에 종사하는 시민 계층은 무거운 세금에 시달렸으며,

농민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이 세 신분의 대표자들을 불러 베르사유 궁전

에서 삼부회(당시 프랑스 왕조의 신분제 회의)를 열였습니다.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였으나, 평민 대표가 성직자와 귀족 의견에 따르지 않자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해산해 버렸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국민 의회'를 만들어 특권 계급과 맞서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챈 루이 16세는 무력으로 탄압하려 들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하여 1789년

7월 14일, 마침내 파리 시민들은 무기 창고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농민들도 이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봉기하여 귀족의 저택을 습격하는 등 프랑스 혁명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만든 국민 의회는 8월 26일 '인권 선언문'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인권 선언의 정식 명칭은 '인간

과 시민의 권리 선언'으로 미국 독립 선언과 계몽 사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배경을 요약해 보면, 제3신분인 일반 국민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억눌린 생활에서 해방되고자 

특권 계급(성직자, 귀족)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권 선언 제1조에는 '사람은 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습니다. 

제3조에는 '모든 주권은 국민 속에 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개과정>

혁명이 계속되자 빵과 식료품 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그 해 10월에는 여자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며 장바구

니를 들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몰려갔습니다.

 

결국 국왕은 '인권 선언'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한편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는 혁명이 두려워 오스트리아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1791년 6월 어느 날, 왕의 가족은 파리를 탈출하여 왕비의 친정인 오스트리아

향했습니다.

 

 

그러나 하인으로 변장한 루이 16세는 국경 부근 도시인 바렌에서 혁명파 관원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바렌 도피 사건'이라고 합니다. 왕의 가족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국민 의회의 혁명가들은 결국 왕을 재판에 넘겨 국민을 배신한 죄명으로 처형했습니다. 1793년 1월, 2만여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혁명의 기운이 자신들의 나라에게까지 뻗칠까 두려워한 유럽 열강들은 동맹을 체결하여 프랑스로 쳐들어

왔습니다. 프랑스는 의용군을 조직해 이들을 막아 냈습니다. 

 

 

<프랑스 혁명 결과>

그 뒤 프랑스는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에 의해 공포 정치가 실시되었으나 1794년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

에서 처형되고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낡은 제도를 무너뜨리고 근대로 가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을 바탕으로 시민 사회와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와 루소로서 "몇몇 사람들만 호화롭게

지내는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고 주장했고 이런 생각이 시민 계층에게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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