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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명언/업적 등 생애 요약 정리

고두암 2015. 12. 3.

로마 공화정 말기 뛰어난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

하였으며, 갈리아와 브리튼 섬을 공격해 로마의 영토를 넓혔으며, 크라수스가 죽은 뒤 폼페이우스를 몰아내고

종신독재관이 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믿고 신임했던 양아들 브루투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에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함께 가담

하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BC 44)는 동지에게 암살당하며 브루투스에게 "너마저"라는 말을

남긴 사람,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하며 돌이킬 수 없는 전진을 했던 사람, 정복의

감격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표현하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 명언'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

기도 합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왕은 아니었지만, 제1회 삼두정치를 펼치고 종신독재관이 된 최고의 권력자이자 정복자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갈리아 전쟁기, 내란기'등의 사서를 남긴 문학가이기도 합니다.

 

 

이제 율리우스 카이사르 업적과 생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교육을 많이 받았으며, 젊어서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고,

특히 담력이 세고 웅변술에 뛰어났습니다.

 

한번은 그가 해적에게 붙잡힌 일이 있었는데, 해적들이 풀어주는 대신 몸값으로 20달란트를 요구하자 그는 화를

벌컥 내며 "내 몸이 그렇게 싼가?"하고 윽박지르며 50달란트를 주자 해적들은 재미있는 친구라고 좋아하며 풀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좋아하지 마! 내가 풀려나면 너희들을 몽땅 체포할 테니."라고 하면서 정말로 수백 명

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해적들을 잡아 처형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 말기에 활약했습니다. 포에니 전쟁 뒤 로마는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이 무렵은 귀족

이 지배하는 시대로 귀족들은 드넓은 농장과 많은 노예를 가졌으나, 농사를 짓던 평민들은 가난에 빠졌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시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지배층도 귀족파와 평민파 두 패로 나뉘어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되었

습니다.

 

이 무렵 노예 검투사인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일어난 뒤, 로마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났는데, 노예들의 반란과

농민들의 몰락은 로마 사회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이런 혼란한 시기에 로마에는 세 사람의 실력자가 나타

났는데, 바로 카이사르와 명장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입니다.

 

 

이 세사람은 정치의 핵심 기관인 원로원이 부패하고 무능력하자 기원전 60년에 동맹을 맺어 이른바 '삼두정치'

를 결성하고 원로원으로부터 정치 대권을 이어받아 제1회 삼두정치를 펼쳤는데, 카이사르는 로마 최고 관직인

집정관이 되어 새로운 법을 만들어 시행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원정길에 올라 갈리아를 평정하고 그 곳의 총독이 되어 로마 제일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어

라인 강을 건너 게르만족을 정복하고, 영국 해협을 건너 브리튼 섬을 공격해 로마의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파르티아 원정을 갔던 크라수스가 그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 세력이

매우 커지는 것을 꺼려 원로원과 짜고, 갈리아 총독 자리에 있던 카이사르를 해임하려고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귀국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분노한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했습니다. 이 때 그는 루비콘 강가에 서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카이사르는 어렵지 않게 로마를 점령하고 원로원과 평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폼페이우스 군사를 격파한 카이사르는 그를 쫓아 이집트로 추격해 갔으나 이미 폼페이우스는 암살당한 뒤였

습니다.

 

이집트에서 카이사르는 동생과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는 클레오

파트라를 도와 이집트 왕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4년에 걸친 내전을 끝내고 모든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민심을 사로잡아 시민

들의 지지 속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 로마를 개혁하려고 했으며, 공화정의 비효율성을 배척하고

효율적인 독재 정치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공화정의 전통을 지키려는 로마 지배층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마침내 공화파는 카이사르를 없애

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원전 44년 어느 날,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카이사르는 공화파 40여명에게 일격

을 당했습니다. 그 중에는 카이사르가 가장 신임한 브루투스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암살당하며 "브루투스, 너마져...."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카이사르는 단검에 스물세 군데나 찔려 폼페이

우스 조각상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장군이자 정치가, 문학가였던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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