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학생 여러분! 오늘은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어요. 이탈리아 탐험가인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1492년 10월 12일인데요,
그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15세기가 될 무렵 유럽에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라는 두 기독교 국가가 이슬람
세력을 몰아 내고 새로운 항로 개척을 서둘렀습니다.
중세부터 유럽에는 '프레스터 존'이라는 사람의 전설이 다음과 같이 나돌고 있었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먼 동방의 왕이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다는데, 그 사람이 프레
스터 존이래" 라는 전설이었답니다.
포루투갈의 엔리케 왕자도 이 전설을 믿은 나머지 프레스터 존과 연락이 닿으면
이슬람을 양쪽에서 공격하겠다는 생각을 지녔습니다. 엔리케 왕자는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으려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날씨가 무더워지자 항해를 중단하였습니다. "아이쿠, 지옥이 가까워졌다!"
이 무렵의 유럽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지요. 바다 끝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었답니다.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도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까지 항해하였다가 폭풍을
만나 되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이 아프리카 남쪽 끝을 '폭풍의 언덕'이라 불렀으나,
포르투갈 왕은 그래도 아시아로 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고 하여 '희망봉'이라고
고쳤습니다.
이 무렵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 8월~1506. 5월)가 등장하였습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생각을 믿고 있었으며, 지구 크기도 실제의 4분의
1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때문에 대서양의 서쪽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게 빠르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처음에 포르투갈의 국왕을 찾아가 후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에스
파냐로 갔습니다.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라는 콜럼버스를 믿고 도와 주기로 하였지요.
1492년 8월, 콜럼버스는 마침내 에스파냐 정부가 준 세 척의 배에 승무원 120명을
태우고 팔로스 항구를 떠났습니다.
콜럼버스는 이미 10년 이상의 선원 경험이 있었으므로 항해술이 뛰어났습니다.
그는 바다 저 편에 인도가 있다고 믿고 70일 동안 항해를 하다가, 모두가 지쳤을 무렵
섬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섬은 오늘날의 아이티 섬과 쿠바였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그 것이 인도라고
믿었지요. 그래서 '서인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카브리 해에 떠 있는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신대륙이 '아메리카'라는 것은 콜럼버스가 죽고 난 뒤에야 밝혀졌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몇 명의 인디언과 몇 가지 신기한 물건만 싣고 귀국을
하였습니다.
제2차 항해 때 콜럼버스는 배 17척에 1,50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가서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섬의 정복을 위해 많은 원주민을 죽였으며, 죽이지 않은 원주민
수백명은 노예로 에스파냐에 보냈습니다.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에스파냐
정부는 콜럼버스를 본국으로 강제 소환하였습니다.
그 뒤 콜럼버스는 다시 항해에 올랐으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지 못한 채 되돌아
왔으며, 결국 그는 에스파냐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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